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로동당 39호실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|| [[남북의 창|[[파일:남북의 창 로고.png|width=80]] [[파일:남북의 썰 로고.png|width=60]]]]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-xtxALGMsGU, width=100%)]}}} || || '''39호실[br](2022년 1월 13일 공개분)''' || || [[이제 만나러 갑니다(프로그램)|[[파일:이제 만나러 갑니다 로고.png|width=80]]]] ||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Vg5OoNECAbg?si=XktOzxcivMNPtIHb, width=100%)]}}} || || '''이제 만나러 갑니다[br]( 2023년 8월 13일 공개분)''' || 39호실의 시초는 [[1974년]] [[김정일]]이 공식 후계자가 되면서 부터였다. 당시만 해도 북한 내에서 부자간 세습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상당수의 핵심 간부들은 김정일을 무시했다. 특히 김정일은 제대로 된 군 경력도 전무한 [[미필]]이었고 군의 고위 간부들은 김정일을 깔보았다. 이러한 상황속에서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체제를 구축하려면 주변의 간부들을 돈과 사치품으로 포섭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하였고 그 상황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39호실이다. 초기에는 39호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취급하는 품목도 고급버섯, 금괴, 아연 정도였다. 그러나 [[마약]], 무기밀매, 인력수출, 밀수, [[보험사기]] 등으로 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품목이 확대되면서 39호실은 어느새 북한 내 외화를 독점해 관리할 만큼 위상이 커지게 되었다. 김정일이 총책임자였고 실질적 관리는 [[장성택]], 전일춘 같은 측근들이 도맡았다. 39호실은 북한 전역과 해외에까지 걸쳐 산하에 각종 총국·지도국·무역회사·은행·기업소 등등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조직체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[[https://www.voakorea.com/a/3918439.html|있다]]. 평범한 기업체도 많이 차리고, 합작사업도 진행하며, [[외화상점]]과 [[북한식당|해외 북한식당]] 운영에도 참여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무기 밀수나 보험사기같은 불법적인 사업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[[마약]]에 까지 손을 댔다가 역효과를 불러일으켜서 북한내에서 마약중독자를 양산시킨 사회적 악영향을 끼친 후폭풍을 일으킨 예도 있다. 2006년 [[미국 하원]] 정보위원회의 추산으로 총액 약 [[https://news.joins.com/article/2479002|40억 달러]], 연 수입 약 3~5억 달러 수준이다. [[2018년]] 초 거듭된 핵·미사일 개발, 각종 선심성 사업, 그리고 미국의 강화된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자금이 거의 고갈되었다는 [[https://www.rfa.org/korean/in_focus/nk_nuclear_talks/secretfund-01242018081703.html|소식]]이 전해졌다. 39호실 출신 [[탈북자]]가 한국을 거처 미국으로 망명한 사례가 있다.[[https://news.v.daum.net/v/20201211134502863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